아궁이가 내는지 연기가 밖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자 나는 아궁에 무엇이 타고 있는지를 단박에 알아낼 수 있었다. 가을걷이 지치러기인 콩깍지와 메밀대를 때고 있었다. 구수한 냄새가 바로 그것을 뜻하는 거였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굴뚝 냄새에 나는 불현듯 콩깍지와 메밀대를 군불 아궁이에 때어 볼 수 있었던 옛날이 그리웠다. 그 무렵은 내 손으로 직접 농사를 지어야 했던 고생스런 청소년 시절이었음에도, 호의호식하며 허리를 굽실대는 수염 허연 늙은이한테 도련님도련님 하는 소리를 들었던 철부지 적의 아련한 기억보다 훨씬 씨알이 여문 그리움이었다.
310 안삼열체
310 Ahn Sam-yeol
<310안삼열체>는 가로줄기와 세로줄기의 대비를 강조한 제목용 글꼴입니다. 글자 하나하나의 아름다움과 주변과의 어울림에 무게를 두고 만들었으며, 2013년 TDC Annual Awards 활자체 디자인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나는 읍내로 나가는 과수원 탱자나무 울타리 곱은탱이를 돌 어름, 잠시 발걸음을 멈춰 다시 한번 옛집을 돌아다보았다. 어느덧 하루의 피곤이 짙게 물든 해는 용마루 위 서산마루로 드러눕는 중이었고, 굴뚝마다 쏟아져나와 황혼을 드리웠던 저녁 연기들은, 젖어드는 땅거미와 어울려 처마끝으로만 맴돌고 있었다. 나는 이어 칠성바위 앞으로 눈을 보냈는데 정작 기대했던 그 할아버지의 환상은 얼핏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할아버지의 넋만은 벌써 남의 땅이 되어버린 칠성바위 언저리에 아직도 묵고 있을 것만 같음은 웬 까닭이었는지 몰랐다. 잘 있어라 옛집, 마지막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옛집을 되돌아보았을 때, 그 너머 서산 마루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지는 해가 있었다.
그날도 아침부터 눈에 뵈던 모든 것들은 꿈결에 들리던 말방울소리처럼 맑고 환상적인 색깔로 빛나고 있었다. 밭머리 저쪽과 과수원 탱자나무 울타리엔 탱자가 볏모개 보다도 더 샛노랗게 가시 틈틈으로 숨어 있었으며, 가녀리게 자라 무더기로 핀 보랏빛 들국화는, 여름내 패랭이꽃들로 불긋불긋 수놓였던 산등성이 푸새 틈틈이에서, 여름 내내 번성하다가 무서리에 오갈들어 꼴사납게 늘어진 호박덩굴더러 보라는 듯이 새들새들 쉴새없이 고갯짓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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